남경민, 나도 그 많은 환타지 속으로 걸어가고 싶다.


남경민- 마티스, N과 세잔느에 대해 논하다

우연히 들린 갤러리 현대에서 집은 엽서 한장.
몇년째 내 책상 위에 걸려 있다.  그녀가 마티스와 세잔의 세상 속을 그렸듯이 그림을 바라보면 그 세상 속으로
잠시 도피했다 돌아올 수 있다.




모네와 N 빛과 색에 대해 이야기하다 _ Oil on Canvas, 224x145cm, 2006.

위안이 되는 도피는 환타지. 환타지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가보다.
모네의 풍경을 그녀의 그림을 통해 바라보는 신선한 느낌. 색감이 너무 아름답다.


"화가들의 삶에 말을 걸고 싶었어요”
 
  "화가들의 작업실 시리즈는 그녀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으로 돌아가 그림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었다. <회화의 알레고리>를 그리고 있는 17세기 화가 베르메르의 방, 그 유명한 <텀벙> 시리즈를 그린 호크니의 작업실, 로댕의 키스와 함께 있는 화가 모네의 방 등 중요한 작가들의 그림들이 그녀의 그림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모네 방의 창밖으로는 모네가 생전에 좋아했던 일본식 다리가 있는 수련이 핀 연못이 실내로 밀려들 듯이 가까이 보이는데, 이것 역시 모네가 그린 그림의 일부이다. 작가의 그림을 그들의 작업 환경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대한 회화의 선배들에게 바치는 그녀의 오마주이다. 미술평론가-이진숙



두 개의 새장 _ Oil on Canvas, 255x80cm, 2005.
늘 그녀의 그림에는 논리와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주로 거울이 그 매개체이다.
항상 논리적인 세상이 재미없어서 그녀의 그림이 더욱 좋다. 계속 바라봐도 이해가 안되니까.



2004~05.

그녀의 그림을 갖고 싶다. 상식을 벗어난 거울이 좋다.


이 있는 실내풍경 _ Oil on Canvas, 162x131cm, 2000.

우산을 쓴 메리 포핀스라도 나타날 것 같은 풍경이다. 그냥 나는 이런 아름다운 환타지가 좋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 같은 이런 감성은 스토리라인이 있는 영화보단 그림에 더 잘 어울린다.
더 많은 상상의 여지를 주니까.

남경민_호크니의 (텀벙) 창안에서 바라다 보다_리넨에 유채_91×210cm_2006

의자 한개는 호크니, 한개는 남경민의 것. 
그림을 그리면서도 계속해서 즐거울 것만 같다. 저기 지브라 의자는 내가 앉고 싶다. 

 
남경민_두개의 창_리넨에 유채_131×162cm_2005

그녀는 21세기 인상파일까? 마그리트와, 호크니와, 리히터와, 고호와, 모네와 소통하는 그녀는
인상파가 아니라 그녀가 좋아하는 모든 화가들과 소통하고 그림을 그릴 때마다 그때 소통하는 작가와 같은
화풍을 즐길 줄 아는 작가인 것 같다. 

"나의 그림들은 일상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의 단순한 풍경이지만
그 공간 안에는 여러가지 소재들과 의미가 내재되어 있으며
관람자에게 역시 다양한 형태로 읽히길 원한다...
한 공간에서 문이나 창을 통해 바라다보는 또 다른 공간은
경계지점 이전에 또 하나의 풍경의 차원으로 읽혀지며
이는 내가 실내풍겨을 그리는 가장 중요한 코드의 하나로 작용한다.
이것은 풍경임과 동시에 의식의 흐름을 감지하는 개인적인 감성의 표현이다.
단지 그 경계점을 통해 현대인이 고독감 내지 불안은 어느덧 희망이란 단어와 랑데부하는 것이다. - 작가의 글 "

by 쩨인 | 2008/11/10 23:29 | extra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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